차가운 커피를 주문해야 할 지, 따뜻한 커피를 주문해야 할 지 고민되는 계절이 왔다. 커피를 주문하는 순간까지도 선택은 미정이다. 이런 사소한 것부터 인생의 대소사까지 고민의 정도만 다를 뿐,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미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소개할 레스토랑의 이름은 되려 직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TBD. 포털 검색창에 나타난 이 약어의 정의는 이렇다.
“To Be Determined” or “To Be Decided” ‘곧 결정될 것’이라는 의미, 사무적 표현으로는 ‘미정’ 임을 의미한다.
‘이미정’도 아니고 ‘김미정’도 아니고 잡지에서 흔히 말하는 ‘가격 미정’도 아닌, 레스토랑 계의 ‘미정’, TBD를 방문해야되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모든 게 미정인 세상에 그 끝이 아름다울 것이란 확신이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것처럼, 누구와 갈 지, 어떤 음식과 와인을 주문할 지, 얼마나 머무를 지 모든 것이 미정이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이 아름다울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TBD는 내추럴 와인이 특화된 레스토랑으로 알고 있다. 총 몇 가지를 보유하고 있나? 이렇게 많은 와인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1백50가지에서 많게는 2백가지를 보유하고 있다. 대륙별로 보자면 프랑스 와인을 주력으로, 이탈리아, 슬로바니아, 독일, 오스트리아 와인까지 다양하다. 와인 리스트가 다양한 이유는 음식과 계절의 페어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뀌고, 그에 따른 메뉴가 바뀌는 레스토랑에 발맞춰 선택의 폭을 넓혔다. 또한 TBD를 찾아오는 손님의 연령대를 국한하고 있지 않은데, 그에 맞는 맞춤 추천을 하기 위함이다.
간판이 없다. 깔끔한 인테리어를 보면 일관된 느낌은 있는데, 굳이 간판을 달지 않은 점이 궁금하다.
패션 비즈니스를 하다가 F&B 사업을 시작했을 때, 일 이라기 보다 ‘소중한 한 끼를, 소중한 시간을 같이 한다’는 생각으로 공간을 구상했다. 그러다보니 이곳의 실체를 알아봐주는 사람들로 채워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에 간판을 달지 않았다. 무색무취의 공간으로, 손님이 찾아와 비로소 완성되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물론, 찾아오는 노고에 대한 볼멘소리도 몇 번 들었다. 그러나 얼굴이 명함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여론을 반영하여 창틀에 로고 정도를 새기는 타협점을 생각 중이다.
애피타이저부터 메인 디시까지 군침을 돌게 하는 메뉴가 많다. 계절에 따라 메뉴가 바뀌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메뉴 개발에 있어 중점적으로 다루는 점 세 가지 있다면?
첫 번째는 비주얼.
음식 사업을 하면서 비주얼을 우선으로 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보기도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은 법이다. 이것은 진리다.
두 번째는 맛의 리드미컬.
풀어서 설명하자면 운율에서 나오는 하모니를 좋아한다. 다 된 음식에 어떤 가니쉬를 얹히는지, 맛에 있어서 기승전결이 있는지, 플레이팅은 적절한지 등이다. 여기에 액션이 가미되면 더 좋다. 인스톨레이션을 통해 음식에 숨을 불어넣는 순간이랄까. 그래서 TBD 음식에는 소스를 부어 완성되는, 돔 속에 갇힌 음식을 개봉하면 훈연이 느껴지는 등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장치를 심어 놓는다.
세 번째는 효율.
얼마나 일관된 맛을 창출할 수 있는지. 조리를 함에 있어서 편차를 줄 일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한다. 오가닉한 식재료도 좋지만 그에 따라 음식의 질이 좌우된다면 이보다 부질 없는 일이 또 있을까.
TBD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독특하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레스토랑을 계획하던 중 지인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아직 미정’이라는 대답을 했더니, “TBD 구만.”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아직 미정인 상황에서 TBD로 명명되었다. 가림새 없는 느낌도 좋았고, 어감도 좋았고.
삼각지의 NM, 자양동의 에이커, 신용산 PPS까지. 한남동 TBD를 비롯해 다양한 F&B 사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명확하다. F&B 브랜드 10개. 패션 브랜드 20개를 운영하는 것. 10개까지 카운트가 남은 외식 사업은 베이커리나 고깃집으로 구성해보고 싶다.
다시 와인 얘기를 해보자. 와인을 추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첫 번째는, 손님의 기분과 자리에 대한 무드. 비즈니스 인지 무언가를 축하하는 자리인지. 그래서 많이 하는 질문은 “어떤 느낌으로 드시고 싶으세요?” 다.
두 번째는, 기호도에 대한 얘기. 와인을 주문하면서 자주 통용되는 얘기를 나눈다. 와인의 바디감이나 향, 산미에 관한 이야기.
세 번째는, 내추럴 와인에 대한 친밀도. 얼마나 자주 접해 봤는지도 중요하다. 고객의 눈높이 또한 당연히 고려 대상이다. 눈이 높다고 다 좋다는 말이 아니라, 내추럴 와인과 친해져보고 싶은 사람에게 아는 척 하는 대상을 권하고 싶지 않다.
네 번째는, 어떤 음식을 주문하셨는지. 페어링은 TBD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다.
TBD에 기대해도 좋은 점이 있다면?
멤버들. 엄청난 신뢰와 프라이드가 있다. 그리고 친절함. 음식은 기호도에 따라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위생과 서비스는 모두에게 일관되게 좋아야 한다. TBD를 비롯한 어바웃블랭크앤코의 모든 레스토랑이 오픈 키친인 이유다. 위생적으로 신뢰를 줄 수 있는 점 외에 팀웍을 감상할 수 있다. 자리에 앉아 오픈 키친을 바라보면, 하나의 접시를 위해 여러 명의 사람이 하나가 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모든 와인은 각기 매력있지만, 특히 TBD 공간이나 음식과 페어링이 좋은 와인을 몇 추천해준다면?
코 끝이 바람을 스치는 계절, 가을을 맞아 레드 와인 몇 가지를 추천하고 싶다.
(왼쪽부터)
마르토 뀌베 알라나(독일) / 오크 체리나 딸기 향이 난다. 전반적으로 실키하고 깔끔한 맛이다. 가격은 14만원대.
후쥬 드 꼬스(프랑스) / 모든 밭의 포도를 블렌딩해서 만든 필드 블렌드 와인이다. 잔향에 허브향이 배어 있어 독특하다. 가격은 13만원대.
르파 드 로르(프랑스) / 토착 품종인 몽두즈로 만들어진 레드 와인이다. 미네랄이 좋은 떼누아에서 만들어져 밸런스가 탁월하다. 가격은 17만원대.
내추럴 와인만의 장점을 말하자면?
한 단어로 표현하자만 ‘개성’이 아닐까. 통용 되지 않은 생산자 개인의 바이브가 담긴 와인이다. 라벨에서도 그 멋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생산자들의 가치관을 내관과 외관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가을을 맞이해 선보인 신메뉴를 소개해달라.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아뮤즈 부쉬로 제안하는 ‘슈’. 새우와 체리, 밤 크림으로 만들어진다. 풍미에 집중한 ‘가을 버섯 파스타’. 가을은 살랑이는 바람과 함께 향을 맡기 가장 좋은 계절이기에 네 가지 버섯을 사용하고 트러플 오일을 가미했다. 그릴 요리로는 ‘치킨’. 닭껍질을 벗겨 버섯 뒥셀을 삽입하고 다시 껍질을 덮어서 로스팅한 치킨 메뉴다. 디저트 메뉴로는 ‘무화과 타르타르’. 입안을 부드럽고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식사 마무리 단계에 화룡점정을 담당하고 있다.
(순서대로)
슈, 연어 그라브락스, 비프 타르타르, 숙성도미 세비체, 가을 버섯 파스타, 치킨, 무화과 타르트.
TBD를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공간인가?
절제된 멋을 가진 공간으로, 손님들로 완성되는 곳이다. 어떤 캐릭터의 사람도 열린 마음으로 와서 즐겼으면 한다.
TBD에서 꼭 해봐야 하는 것이 있다면?
채광이 좋은 창가 자리도 좋지만, 내부에 앉으면 해가 질 때쯤 벽을 통해 자리를 함께 하는 사람의 실루엣이 나타난다. 깔끔한 인테리어를 뚫고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앉은 사람이 모여 완성이 되는 곳, TBD.
Crew (왼쪽부터) CEO 김기환, Sommelier 김다희, Manager 김희은, Chef 노효정, 김형기, 조제희, 채수용.
Must 가을 신메뉴.
Price 1만원대 중반부터 3만원대 후반까지.
Time 화요일~ 일요일,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와인 1보틀 주문 필수.
예약 가능. 주차(한강진역 공영주차장 이용(도보 5분 거리)).
Address 서울시 용산구 한남대로27길 25 2층.
Tel. 02-465-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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