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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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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메이커 유킴의 하루

목적론을 따르지 않는 일상에 대하여

Text
Yeon, Yoonjung
Photography
Shin, Jiwon
Model
You Kim
Location
Ace four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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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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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철학자 비포처럼 되려고 노력한다. 세상에 질문하는 데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분노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모델, 감독, 작가···,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하다 보니 가끔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거지? 하면서 우울해질 때가 있다. 문제의식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서울에 와서 무엇부터 했는지 궁금하다.

 

오자마자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일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원래는 소셜 라이징 만남을 좋아하는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여러 직업을 동시에 하는 프리랜서가 되고서부터는 만남의 중요성을 느꼈다.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스케이트보드 타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서 봤다. 직접 작업한 이세이 미야케 영상에서도. 스케이트보드 구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본인 보드 실력에 대해 말해달라.

 

7~8년 전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탔다. 잘 타고 싶은 욕심 말고, 공원이나 한적한 길에서 보드에 올라타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 보통은 걸어가거나 차를 타고 갈 거리를 보드 타고 가다 보면 그 속도가 조금 다르게 느껴져서 좋다. 차에서는 핸드폰을 하거나 직접 걸어갈 때는 지루할 수도 있는데, 보드 타는 속도는 딱 중간이라서 좋아한다. 바깥 풍경도 보면서 내가 직접 보드를 움직이는 행위가 새로운 사색의 순간이랄까.

 

 

즐겨 타는 스케이트보드의 종류는?

 

크루저 보드. 갖고 다닐 때 편하다. 날씨 좋아지면 언제든 들고 나간다.

 

 

몸의 새겨진 타투에 시선이 간다. 허벅지 타투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2년 전에 새겼다. 고민하고 타투를 하는 편이 아니다. 내키면 한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나 영감을 받은 것들을 곱씹으려고 새긴다. 올해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내년에는 중요하지 않아질 때가 있는데, 까먹는 나 자신이 좀 웃기다. 타투는 내게 메모장이다.

 

허벅지 타투는 ‘baby bifo’. 좋아하는 철학자의 애칭이 비포다.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철학자인데, 살아가는 현시대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래디컬 하면서도 반항적이다.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임에도 지금까지 시적으로 정치적이고, 정치적으로 시적인 사람. 어떤 아티스트가 이렇게 비유하는 것을 우연히 봤었는데, 비포를 보면 이 표현이 떠오른다. 끊임없이 세상일에 분노하는 그의 모습이 자유로워 보이고 부럽다. 그래서 비포라는 이름을 새겼고, 너무 딱딱해 보여서 귀엽게 베이비를 넣었다. 남자친구를 부르는 것처럼.

 

 

타투를 새길 때 느끼는 기분은?

 

딱히 없다. 아프지 않고 오히려 평화롭다. 그래서 잠드는 경우도 많고. 어두운 곳에서 불 하나 켜 놓고 집중하는 타투이스트 모습 보는 것도 좋고. 기계 소리도 좋다.

 

 

평소에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인가?

 

감독치고는 사진에 정말 관심이 없다. 평소 영감받거나 찍고 싶은 것들은 전부 글에서부터 시작된다. 언어를 갖고 탐구하는 것을 좋아해서. 제일 재밌고 그렇게 생각의 물꼬가 트이면 심장이 마구 뛴다.

사진은 ‘셀피’를 많이 찍는다. (웃음)

 

 

매력을 느끼는 피사체가 있다면?

 

평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포착되는 순간. 예를 들어 바람이나 공기 같은 것들, 대만의 후덥지근한 여름이나 가을의 서늘함 같은 거 말이다. 바람을 영상으로 제대로 담았을 때 창틀 안에 있던 커튼이 밖으로 튀어 나가며 흩날리는 순간. 길거리에 있는 풀잎이라던가. 공기 같은 게 찍힐 때, 네온 사진을 찍을 때면 도시의 공기가 전부 느껴지는 것처럼.

 

스스로 영상이랑 사진이랑 뭐가 다르지? 물었을 때 앞선 질문이 답이 되곤 한다. 피사체보다는 상황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피사체에 집중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유학 시절에는 순수 미술을 공부했다고 들었다.

 

원래 한국에서 패션을 2~3년 정도 전공했었다. 그러다가 대학교를 자퇴하고 영국으로 가서 순수미술 전공으로 다시 입학했다. 옷을 사는 것만 좋아했지, 원래 하던 패션 디자인 전공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다. 순수미술은 전공하면서 동시대 예술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만 3~4년을 다 쓴 것 같다.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탐구하는 과정 자체를 즐겼다.

 

유학 시절에 영어도 함께 배웠는데 액세스할 수 없었던 지식의 마스터키가 생긴 기분이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글을 읽을 때는 해석이 제한적인데, 영어를 즉각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자유롭고 여유로운 라이프를 지향한다고 들었다. 하루에 꼭 지키는 본인만의 루틴이 있다면?

 

일주일에 5~6일은 아침에 운동한다. 아침 운동 말고는 내게 의미가 없다. 아침에 실컷 근육을 움직이면, 하루의 기분이나 몸 상태가 다르다. 정신에도 근육이 달라붙는 느낌?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는데 웃을 때 보이는 보조개가 매력적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첫인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자주 웃는 편인가?

 

지금 나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니까, 무표정 얼굴밖에 없더라. 실제로 나를 만나게 되는 분들은 조금 놀란다. 평소에 얘기 나누는 것도 좋아하고, 잘 웃는 편이다.

 

 

가장 나를 웃게 하는 순간은?

 

사람들이랑 만나면 많이 웃는다. 그리고 케이크를 먹을 때. 달콤한 것을 먹을 때면 다른 사람처럼 돌변한다.

 

 

출장이 잦은 편인가?

 

대부분 서울에 많이 온다. 이번에도 프로덕션 때문에 방문했고 오래 머무를 예정이다.

프로덕션 일을 1~2개 맡으면 두 달은 금방 간다. 이제는 급하게 떠나는 게 싫다. 친구들에게 “다시 언제 가?” 이런 질문을 듣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길게 있으면서 프로덕션 작업, 모델 일 모두 재미있게 하고 싶다.

 

 

영상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하는 것 같다.

 

하는 일이 여러 가지가 있다. 모델이랑 필름 메이커···, 그리고 글을 쓴다. 유킴이라는 브랜딩 자체를 지금까지는 혼자만 알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모든 일을 진심으로,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일 년에 1~2번씩은 기고도 하고 있다. 최근에 쓴 글은 영화 에세이인데, <나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에 대해 논했다. <무비 고어>라는 영화 잡지에 기고했다. 내가 기고한 이후 탕웨이의 남편, 김태용 감독도 그곳에 기고했더라. 왠지 더 기분이 좋았다.

 

 

최근 쇼핑한 것 중에서 만족하는 것이 있다면? 

 

쇼핑을 잘 안 한다. 좋아하는 브랜드 제품만 때가 되면 하나씩 산다. 플리츠 플리즈 이세이 미야케 옷을 좋아한다. 일할 때 입어도 편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미팅이 생기거나 파티에 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입어도 어색하지 않은 옷. 오늘도 입었다.

 

 

한국에서 즐기는 삶도 좋을 테지만, 그런데도 베를린 생활 중 그리운 부분이 있다면 말해달라.

 

두 도시의 에너지가 다르다. 서울은 목표를 성취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베를린은 하루하루를 얼마나 가치 있게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집중된 곳 같다. 베를린에서 늘 했던 행동이 있는데, 아침에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을 걷다 보면 보이는 커다란 연못에 들린다. 연꽃이 가득 찬 연못인데, 그걸 매일 관찰했다. 이유 없이 행동해도 무방한 것 중 하나랄까.

 

모든 행동의 목적만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날씨에 따라서, 해의 각도에 따라서 연못 안의 연꽃들이 미세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그때 알았다. 밤에 클럽 갔다 온 후 들리면 연꽃잎이 완전히 닫혀 있고. 날씨가 적당히 좋을 때는 활짝 열려 있고. 해가 강렬하게 내리쬘 때는 꽃이 잎사귀 아래 숨어 있다. 이런 사실이 나에게는 정말 미치도록 흥미롭다. 지금도 궁금하다. 나의 연못은 잘 있을지.

 

 

Instagram @youkim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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