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문득 좋은 향을 풍기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여지없이 그에게 시선을 빼앗기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력적인 향기는 공기를 지배하고 사람을 끌어당긴다. 이처럼 좋은 향의 역할을 대변이라도 하듯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수향(Soohyang)’을 운영하고 있는 김수향 대표를 만났다.
향은 본인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Life is better when you smell nice!’라고 외치며 환한 미소를 건네는 그녀는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 하나로 향을 만들며 수향을 이끌고 있다.
본인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향을 하나 말해달라.
풀잎을 짓이길 때 나는 컷 그래스(Cut Grass) 향. 차 안에서 밀려오는 졸음을 꾹 참다 문득, 녹음이 짙은 길을 지나면 퍼지는 강렬한 풀 내음에 눈을 번쩍 뜬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향이 바로 컷 그래스 향이다.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컷 그래스 향처럼,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게 나의 소명이라 여기고 있다.
향에 대한 애틋함은 언제부터 갖게 됐는지 궁금하다.
비주류 문화와 관련된 책, 음악, 인물, 영화 등에 한참 빠져 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 빠졌던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의 퍼퓸 라인을 통해 니치 퍼퓸의 매력을 처음 알았고, 첫사랑의 시작처럼 향이 좋아 며칠을 앓았던 기억이 난다. 무언가에 빠지면 다소 폭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당시 시작한 향에 대한 폭주가 아직 멈추지 않았다.
내년이면 론칭 10주년을 맞게 되는 수향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본인만의 브랜드 철학이 있다면?
Life is better when you smell nice!, ‘좋은 향이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라는 믿음으로 브랜드를 시작했다. 의욕이 넘쳤던 브랜드 창립 초기와는 반대로 어딘가 부드럽고 느슨해진 지금의 나는, 그저 좋은 향을 맡는 즐거움을 많은 이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향을 이끌어가고 있다. 모두가 정말로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품을 개발하기 전, 어떤 순간에 주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하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자료를 찾는다. 프로젝트와는 관계없는 자료들을 더 찾아보고, 시장조사를 통해 트렌드를 익힌다. 요즘 뜨는 음악, 영상, 문장, 그리고 전통적인 학술 자료까지 샅샅이 살피는 편이다.
쉴 틈 없이 자료를 찾다 결국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가 되면, 모든 것을 잠시 덮어두고 산책과 목욕을 즐긴다. 약간의 휴식을 취하다 보면 결정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자연에서 착안한 향 중 좋아하는 냄새는?
비가 내리기 직전의 공기 냄새.
계절별로 즐겨 찾는 향이 있다면?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어떤 노트의 향이 어울릴까?
앰버(Amber) 향. 제일 좋아한다. 향에는 날씨와 상관없이 깊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앰버만한 게 없다.
베이스 노트 중에 제일 좋아하는 향이 있다면?
베티버(vetiver). 베티버를 단품으로 시향하면 매우 특징적인 개성이 있는데, 다른 향들과 섞일 땐 다른 향을 서포트 하면서 그 향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고 안정감을 준다. 참으로 성품이 멋진 베이스라고 할까. 이런 특징 때문에 베티버는 70%가 넘는 향수 베이스 노트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단독으로 사용해도 빠짐이 없는 매력적인 향이다.
음식도 향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다. 어떤 음식 좋아하나?
소스류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좋아해서 익혀서 먹어야 하는 재료보다는 조리 없이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채소나 과일을 좋아한다.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잎채소를 먹는다. 하루 종일 야채 섭취가 덜 된 것 같으면 상추라도 몇 장 집어먹곤 한다. 생 채소가 주는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 고기 없는 밥상보다 채소 없는 밥상이 더 싫다.
올해 구매한 제품 중 기억에 남는 물건과 사건이 있다면?
올해는 패션 관련된 쇼핑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던 한 해였다. 작년 12월부터 1년간 패션 아이템은 전혀 사지 않았다.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하려고 DJI 브랜드의 Pocket2 카메라를 샀는데, 찍는 건 재밌었지만 편집할 시간이 아직 부족하다. 기억에 남는 일화는 지난 6월, 마이애미에 전 세계 향수 업계 사람들을 모아 개최된 컨퍼런스에 갔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친구도 많이 사귀고 신기한 향의 발전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자리였다.
공간과 향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공간과 향의 큐레이션이 잘 되어 있다고 느낀 곳이 있다면? 해외도 좋다.
영국 리버티 백화점은 입구에 꽃집이 있다. 별다른 장치 없이도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생화의 향기가 모두의 기분을 행복하게 해주는 연출이라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