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Apr 1, 2024
3747 Views

#Particle_People 신진 패션 브랜드 이지앤아트

젊음으로 지은 거침없는 옷

Interview
EGNART
Text
Park, Geunyoung
Photography
Noh, Junggyu

People
Apr 1, 2024
3874 Views

젊음으로 지은 거침없는 옷

 

인터뷰를 하며 만난 이지앤아트의 윤규석, 임채민 디자이너는 여느 청춘과 다름없이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불안감 속에는 선명한 행복이 보였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 가고 있는 방향에 한 치 의심이 없는 초심자에게서 느껴지는 신선한 에너지가 그들의 옷에서 묻어났다. 앞으로 이지앤아트는 지금보다 더 다듬어지고 멋진 옷을 만드는 브랜드로 성장할 테지만 지금의 느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다. 다시 오지 않는 젊음처럼, 두 사람은 지금에만 할 수 있는 옷을 만든다.

 

Interview EGNART (@easynarts)
Text Park, Geunyoung

Photography Noh, Junggyu

PART 1. Work : 삼겹살집에서 도원결의로 탄생한 브랜드.

카메라 앞에서 쑥스러움을 타는 두 분의 모습이 이지앤아트의 과감한 이미지와 달라서 더 궁금한 점이 많아져요. 윤규석, 임채민 두 대표님은 처음 어떻게 만났나요?

윤규석 (이하 규석) 저는 복사기 회사에 다니며 멋진 옷과 신진 아티스트의 활동을 알려주는 인스타그램 패션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채민이의 패션 아카이브 작업을 발견하곤 마음에 들어서 당신의 작업물을 내 계정에서 소개해도 되겠냐고 대뜸 메시지를 보냈죠. 그게 인연이 되어 밥 한번 먹기로 하고 삼겹살집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서로 성향도 너무 잘 맞더라고요. 당시 저는 좋아하는 옷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있던 때라, 이 친구랑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라… 예상치 못한 이야기 전개인데요. (웃음) 임채민 대표님도 이어서 소개를 해주세요.

임채민 (이하 채민) 저도 원래는 K-직장인이었어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공부를 열심히 하는 착실한 학창 시절을 지나 공대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 디스플레이 회사에 취직하고… 다수가 정석으로 여기는 루트를 밟았죠. 하지만 저도 옷을 너무 좋아했고, 내 일을 하고 싶은 꿈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퇴사 후 옷을 만들겠다고 혼자 애쓰던 중에 형을 만났어요.

 

두 분 다 패션 전공자가 아니라는 것도 신기해요. 처음 뜻을 모으던 당시에 두 분은 어떤 옷을 만들고 싶었나요?

채민 진짜 특이한 옷. 세상에 없는 옷. “공기로 옷을 만들어 볼까?”하는 이야기도 진지하게 나눴을 정도로요.

 

규석 채민이도 저도 약간의 반골 기질이 있거든요. 저희의 모습을 거르지 않고 담아내 수 있는, 틀에 박히지 않은 옷을 만들자고 했어요. 그래서 브랜드 이름도 저희 둘을 설명한다고 생각하는 단어인 ‘STRANGE’를 거꾸로 뒤집어서 지었고요.

 

특이한 거로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봤네요. 두 분의 그런 ‘이상한 매력’은 어디서 발현되었다고 생각하나요?

규석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영향이 커요. 모든 방면에서 참신한 선택을 내리는 분들이시거든요. 특히 저희 어머니의 요리관이 매우 독특한데요, 치킨 먹을 때 꼭 수박을 곁들이거나, 김치찌개에 진미채를 넣는 등 가족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참신한 페어링을 자주 시도하세요. 어쩌면 저희 어머니가 이지앤아트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채민 옆에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저는 정말 규석 형 덕분에 내면의 엉뚱한 상상을 마음껏 현실로 꺼낼 수 있게 되었어요. 처음 패션 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는 아주 멋진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실 이미 세상에는 멋진 옷을 만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요. 내가 빛날 수 있는 포지션이 어디일지 고민하고 있을 때 형을 만나 마음을 맞추며 함께 변종의 길을 걷게 된 거죠. 저를 잘 이해해 주는 사람과 함께 하니 제 캐릭터가 명확해졌어요.

 

그렇게 이지앤아트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옷들이 탄생했군요. 몸의 중앙에 있어야 할 바지 지퍼가 옆쪽에 달려 있거나, 허리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똑딱이 단추를 여러 개 달아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입을 수 있게 한 바지, ‘JACKET’이라 적은 바지와 ‘PANTS’라 적은 재킷 등… 두 분은 옷을 만들 때 첫 단추를 어디서부터 꿰나요?

규석 일단 저희는 수다를 정말 많이 떨어요. 출근하면 일단 ‘어제 뭐 했어?’부터 시작해서, 컴퓨터와 핸드폰을 켜지 않고 둘의 생각만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를 이어가요. 대화 속에서 몇몇 키워드가 떠오르면 거기에서 다시 마인드맵을 하듯 생각을 펼쳐 나가며 주제를 고민해요.

채민 예를 들어 이지앤아트의 캡슐 컬렉션이었던 ‘휴머니즘Humanism2’에는 페인트 가게, 도장 가게, 금은방 등 우리 주변의 오래된 가게들이 배경인데요, 이 주제도 어릴 때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던 가게들이 점점 사라지는 게 아쉽다는 한마디에서 시작됐어요. 규석 형은 전라도 광주, 저는 충청남도 서산, 둘 다 지방 출신이라 더 그런지 몰라도, 동네 가게들 속에 쌓인 시간과 추억을 아련하게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그러던 중 우연히 페인트 가게 앞을 지나다가 복슬복슬한 페인터 롤러를 발견하곤 이게 퍼 재킷이 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로 ‘Paint Roller Fur Jacket’도 만들었고요.

 

저도 이지앤아트의 휴머니즘 캠페인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세월이 흔적이 묻어있는 가게를 배경으로 사장님들이 이지앤아트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실험적이고 강렬하게만 느꼈던 이지앤아트에서 사람 냄새가 느껴졌거든요.

채민 저희 둘 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바쁜 어르신들을 잡고 이 생소한 옷들에 관해 설명을 해드리고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을 드리려니 힘들었어요. 열 집 가면 여덟아홉 집은 거절 당했죠. 그래도 다행히 “저희 옷 장사하고 있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며 솔직하게 다가가면 귀찮아하시면서도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앞으로 이지앤아트의 캠페인으로 풀어보고 싶은 또 다른 주제가 있나요?

규석 저희는 꾸며지지 않은 거친 느낌의 옷을 좋아해요. 그런 느낌을 따라가다 보니 현재 이지앤아트의 옷은 ‘워크웨어’ 키워드로 좁혀졌고요. 그런데 문득 패션 업계에서 말하는 워크웨어를 서구 문화에 치중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워크웨어라는게 말 그대로 작업복인 거잖아요. 그러던 어느날 어느 공사장을 지나다가 일하는 분들의 작업복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마 다들 한 번쯤 본 적 있으실 거예요. 왜 한국 공사 현장에 일하는 분은 보통 회색이나 탁한 보라색 바탕에 노란색 실로 ‘무슨 무슨 산업’, ‘안전 재해’ 이런 글씨가 궁서체로 수놓아진 옷을 입고 있잖아요? 저 작업복이야말로 한국의 워크웨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언젠가는 이지앤아트 느낌으로 해석해 보고 싶어요.

 

얼마 전에는 이지앤아트의 아트 프로젝트도 열었습니다. 첫 전시의 주제인 ‘미식’은 또 어떻게 정하게 된 건가요?

채민 저희가 거의 매끼를 같이 먹다가 보면 형은 흘리기 좋은 음식도 절대 흘리지 않고, 저는 흘릴 게 아닌 음식도 잘 흘려요. 둘의 차이가 너무 웃겨서 밥을 먹을 때마다 서로 웃고 놀리는 게 일상이죠. 그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시 기간 동안 아침마다 하얀 캔버스 작품 위에서 실제로 무언가를 먹으며 음식물을 잔뜩 떨어뜨린 다음에 그 흔적을 작품으로 내걸기도 했어요.

이름 그대로 ‘Easy’한 전시이네요.

규석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옷만으로 표현이 안 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표현 방식에 자유도를 높여보고자 전시를 선택했어요. 이지앤아트의 예술은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었으면 해요.

 

두 분도 대표는 처음이니, 브랜드를 운영하며 겪는 어려움도 많을 거 같아요.

규석 저희 둘이 모든 걸 다 하다보니 이지앤아트의 고유한 색을 지킬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결과물을 내는 속도는 조금 더디죠. 지금도 올해 첫 번째 컬렉션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는 중이고 아마 4월 중순쯤에 출시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지앤아트 2024년 봄, 여름 시즌 컬렉션의 주제는 ‘동심’이에요. 이번에도 역시 저희 둘이서 나눈 옛날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고, 종이비행기와 곰돌이 등과 같은 유년 시절의 상징들이 등장해요. 성인이 되며 잃어버린 감각을 저희만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옷에 담아내 보려고 해요.

 

새로운 멤버를 영입할 계획은요?

채민 물론 있죠. 하지만 아직은 준비가 더 필요해요. 이지앤아트가 확실한 비전 아래에서 조금 더 단단해지고 저희도 리더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때 직원에게 필요한 대우도 충분하게 챙기고 오래 함께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PART 2. Daily Life : Based in Hwanghak-dong, Seoul

 

두 사람 각자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를 서로 꼽아준다면요?

채민 호기심. 규석 형은 제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호기심이 많아요. 형이랑 이야기를 하면 100m를 10km처럼 걸어갈 수 있어요. 바닥의 맨홀 뚜껑으로 이야기를 한참 하고, 전봇대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해요. 보통 형이 대화를 주도하죠. “저거 좀 봐봐” “저 부분 재밌는데 옷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하며 이야기하다가 나오는 아이디어가 많아요.

 

그런 대화 나누기에 황학동이 최적의 동네일 거 같은데요?

채민 맞아요. 이 동네에는 옛것과 새로운 것이 뒤섞여 있어서 재밌어요. 그런데 저희는 어느 동네, 어느 골목에 가도 흥미로운 대화 요소를 많이 찾아낼 자신이 있기도 해요.

 

그럼 규석 디자이너님은 채민 디자이너님을 어떤 키워드로 소개하시겠어요?

규석 성실. 채민이는 정말 성실한 사람이에요. 함께 일하는 동안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먼저 도착해서 청소하고 있을 때가 많아요. 덕분에 작업실이 항상 깨끗해서 이런 저런 복잡한 일이 생겨도 문제의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고, 작업 집중도도 높아요.

두 분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규석 요즘은 다음 시즌 준비가 한창이라 오전 9시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해요. 둘 다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출근 시간 지키는 걸 중요하기 생각하고, 출근하면 청소부터 해요. 그러고 나면 요즘은 패턴 뜨고 샘플 만드는 나날의 반복이죠.

 

투명 테이프에 시계와 반지를 프린트하여, 피부 위에 붙이면 액세서리를 착용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제품(TAPE EARRING, TAPE RING, TAPE WATCH), 양철통에 가방 그림을 그린 리얼 ‘버킷’ 백(BUCKET BAG) 등 피식하고 웃게 만드는 제품들도 소개하고 있어요. 이런 유머를 충전하는 두 분의 방법이 따로 있나요?

규석 서로를 웃겨주기? 평소에 이야기 나누며 웃고 떠들었던 에너지가 제품에 담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홈페이지의 ‘EASY’ 카테고리에도 비슷한 아이템들로 채워질 예정인가요? 

채민 지금은 비어 있는 카테고리인데, 앞으로는 컬렉션 작업을 하며 썼던 팔토시, 디자인 스케치를 했던 종이 등 저희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서 엉뚱한 제품도 다뤄보고 싶어요. 저희가 농담하듯 주고받았던 이야기가 제품으로 탄생하기까지의 중간 단계, 가공되기 전의 아이디어를 전하면 이지앤아트를 더 잘 이해할 방법이 될 거로 생각해요.

 

강렬한 이지앤아트의 옷과 달리, 두 분의 스타일은 올블랙의 차분한 모습이에요. 평소에는 어떤 브랜드나 옷 스타일을 좋아하시나요?

채민 리바이스나 유니클로 옷을 자주 입어요. 물론 저희가 만드는 결과물에 대한 프라이드는 높지만, 아무래도 작업할 때는 몸을 움직일 일이 많다 보니까 꾸밈이 없고 편안한 옷을 찾게 되면서 스타일이 점점 간소화되고 있어요. 그런데 삼겹살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저희 둘 다 지금과는 완전리 다른 모습이었어요. 저도 탈색모에 반삭을 하고 있었고, 형은 가슴팍에 소매가 달린 희한한 옷을 입고 있었어요. (웃음)

 

규석 이지앤아트도 궁극적으로는 일상에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매일 입을 수 있게 하려니 저희 색깔이 사라지는 거 같고, 두 요소를 모두 충족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앞으로 이지앤아트가 풀어가야 할 숙제이죠.

 

이지앤아트를 꾸려가는 두 분은 참 행복해 보이지만, 안정적인 삶에서 벗어나며 포기해야 했던 것도 많았을 거로 생각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택했을 때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규석 저희도 힘들 때가 많은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마음이 들진 않아요.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힘이 든다면 자꾸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텐데, 지금은 어떻게든 다시 해보려고 하죠. 이지앤아트가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보려고 하나요?

채민 그냥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잘 살아야죠.

My [P]aticles : Collecting [P]articles for Connecting [U]s

 

이지앤아트 윤규석, 임채민의 사적인 조각들

 

[P]eople_ 요즘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

규석 : 친동생, 옷을 좋아하면서도 나와 보는 관점이 달라서 도움이 되는 의견을 많이 준다. 외부 감사 같은 느낌.

 

채민 : 부모님, 여자 친구, 그리고 규석이 형… 요즘은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힘을 많이 얻는다.

 

[P]late_ 좋아하는 동네 맛집?

규석, 채민 : 신당 중앙시장의 장수 보리밥, 된장찌개랑 반찬까지 정말 맛있다.

 

[P]laylist_ 작업할 때 즐겨 듣는 노래?

채민 : 이지앤아트의 DJ인 규석 형의 플레이리스트를 노동요 삼아 작업한다. 락, 클래식, 케이팝, 멕시코 음악 등등 모든 장르가 어우러져 있어서 질리지 않고 에너지를 끌어올려 준다.

규석 : 출근할 때의 기분이 그날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다. 오늘은 중경삼림 재개봉 소식을 보고 중경삼림 OST를 틀어두었다.

 

[P]roduct 나에게 없어선 안 될 필수 아이템?

규석 :  이어폰, TMI인데 나는 사람들의 음식 먹는 소리를 싫어해서 밥 먹을 때 보통 이어폰을 낀다. 무선 이어폰은 충전이 안 되어 있을 우려가 있어 유선 이어폰을 선호한다.

채민 : 미싱, 우리의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 장비들.

(규석 : 엇, 저 대답 바꿔도 되나요…)

 

[P]lace 영감이 필요할 때 방문하는 공간?

규석 공간보다는 바깥을 좋아한다. 청계천과 그 주변 골목을 돌아다니며 얻는 아이디어가 많다.

채민 날씨가 좋으면 청계천 자전거 도로를 따라 따릉이를 타고 낙원상가와 서울역까지도 다녀오기도 한다. 마음껏 바깥 공기를 마시며 돌아다니다가 작업실로 돌아오면 더 활기차게 일할 수 있게 된다.

Particle Newsletter
이름이 입력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