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icle_Peolpe 고어플랜트 서울, 안봉환
괴근 식물의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고어플랜트 서울.
그리고 식물을 매개로 오래도록 고객과 함께 늙어가며 오랜만에 봐도 반갑고 멋스러운 이웃이 되고 싶다는 고어플랜트 서울의 안봉환 대표.
사람들이 나만의 공간에서 모든 걸 잊고 식물을 바라보며 좀 더 나아진 기분을 마주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마음 때문인지, 고어플랜트 서울에서 만나는 식물은 저마다 다른 생김새를 가져도 다들 묵묵히 내 말을 들어줄 것만 같은 인상을 내비쳤다.
삼각지역 4번 출구에 인접한 고어플랜트 서울, 괴근 식물과 안봉환 대표의 안목으로 채워진 그곳에서 나눈 이야기.
Interview Ahn, Bonghwan (@goreplantseoul)
Text Yoon, Dayoung (@dda_dud)
Photography Ha, Junho (@junho_obscurus)
괴근 식물을 소개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빈티지, 남들이 안 입는 것, 잘 모르는 브랜드, 이런 것들을 되게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남들과는 다른 걸 소개하고 싶었어요. 제 마음이 닿았는지 남들과는 다른 걸 키우고 분들이 처음에 많이 찾아와 주셨어요.
고어플랜트 서울의 시작이 궁금해요.
고어플랜트 서울은 서울에서 최초로 괴근 식물을 선보인 가게예요.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1층에 식물 가게, 꽃집이 있어야 한다는 상식에서 벗어나, 건물의 2층과 3층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때 당시에는 코로나가 시작하기 직전이었는데,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전에는 관심을 크게 안 가지던 식물에 눈길을 주시더라고요. 그때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기억에 남거나 뿌듯했던 경험이 있나요?
일단 저희 가게에서 식물을 데려간 고객이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방문해 분갈이하러 오면 참 기분 좋아요. 제가 건넨 식물이 너무 잘 자란 모습으로 마주쳤을 때 참 뿌듯하죠.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식물을 통해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아서요.
식물과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
어쨌든 저의 역할은 누구든 식물을 잘 키울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거예요. 어떤 환경에서도 잘 키울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거요. 그래서 원래 식물이 자라난 농장만큼 해가 강하지 않고 농장만큼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게 대부분의 가정이라서 보편적인 환경에 적합한 식재를 하고, 배수가 원활하게 분갈이하고, 흙을 배합해요. 그리고 저희 가게가 멀어서 자주 못 오시는 분들을 위해 온라인 스토어에도 신경을 쏟고 있네요.
‘사람들이 식물을 키웠을 때 좀 시들어야 나도 더 팔 텐데’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저는 식물을 데려오면 매일 죽여요, 근데 여기서 산 건 아직도 잘 키우고 있어요’라는 말이 더 기분이 좋아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식물을 오래오래 키울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게 저의 역할이니까요.
고객과 함께 늙어가고 싶어요
고어플랜트 서울을 찾아주시는 분들과 함께 늙어가고 싶어요. 아마도 그게 브랜드로서 고어플랜트 서울을 오래도록 지속할 힘일 거예요. 지금 약 4년 정도 운영하다 보니 저희 가게에 매주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씩 방문하셔서 그냥 이야기만 나누는 경우도 많아요. 식물 하나 덕분에 우리는 몇 년이라는 시간을 공유한 이웃이 된 거죠.
이전에 의류 브랜드에서 인턴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프로젝트, 다양한 경험을 거쳐 저의 첫 가게, 고어플랜트를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브랜드의 지속성’이 어렵다는 걸 너무 잘 알아요. 뜨거운 관심 끝에 휘발하는 경우도 많이 목격해서 그런지, 그냥 꾸준하게 하는 브랜드를 닮고 싶어요, 오랜 기간 고집스럽게 소재나 디테일에서 집요함을 보여주는 브랜드 있잖아요. 빔즈나 비즈빔처럼.
현대 사회의 구조상 쉽진 않겠지만, 그런 브랜드처럼 고어플랜트 서울을 뭔가 유행처럼 휙 지나가는 스토어가 아닌, 꾸준하고 단단한 브랜드로서 유지해 나가고 싶어요.
그런 이유로, 비록 식물 가게이긴 하지만, 새로운 브랜드와 협업을 하면서 제가 다루고 있는 식물을 알리면서 제가 소개하는 식물을 키우고 계신 분들이 즐거움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어요.
고어플랜트 서울, 이름의 의미
보통의 식물 가게와 다른 콘셉트, 저만의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식물은 아름답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제가 괴근 식물을 바라봤을 때는 단순히 아름다움에서 그치지 않았어요. 어떤 괴이함을 느낀 거죠. 그래서 원래 ‘괴근(塊根) 식물’의 ‘덩어리 괴(塊)’를 ‘괴이할 괴(怪)’로 해석해 제가 괴근 식물을 감상하고 느낀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냈어요.
아무리 작더라도 필요한 나만의 공간
1인 가구가 늘어난 요즘, 당연히 집도 작아졌겠죠. 원룸 혹은 투룸일 거예요. 그럼에도 그곳에 나만의 공간은 있을 거예요. 피규어를 수집하는 분이라면 조그만 선반이라도 있을 거란 말이죠? 그것도 공간인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공간.
퇴근하고 집에 와서 식물 가꾸고 그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시간도 남들과 보내는 시간이 아닌, 내가 보내는 시간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것 앞에서의 시간에 대한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좋겠어요. 나만의 공간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그곳, 혹은 그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저 좋고 괜찮은 걸 아실 거예요. 채우는 재미도 있을 거고요. 내가 사는 곳이 원룸이어도 좋고, 아주 작은 선반에 수집해도, 그것이 식물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놓여있고 그 앞에서 내가 보내는 시간, 그 순간에는 모든 걸 다 잊고 내가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일에 대한 것도 다 잊고. 온전하게 그냥 나를 위해서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 정도 해소하고 나아진 기분을 마주하길 바라요.
고어플랜트 서울을 오픈하기 이전과 이후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큰 변화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일과 삶의 경계가 사라진 거예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농장에 가고, 배송을 위한 작업을 해요. 그리고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고어플랜트 서울 운영하고요. 따지고 보면 제가 쉬는 날이 따로 없어요.
그래도 큰 스트레스는 없어요. 오히려 예전보다 더 여유롭고 편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걸 하니까요.
제일 애착 가는 식물
고어플랜트 서울을 대표하는 식물이라고 할 수도 있는, 아데니아 글로보사(Adenia globosa)에요. 외부 행사에 참여할 때, 아데니아 글로보사를 딱 안고 차에서 내리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해요. “너희 이런 거 본적 없지? 이게 코덱스야.”
자부심이 생길 정도로, 누구에게는 되게 멋있고, 누구에게는 되게 이상할 수도 있는 모습을 지니고 있어요. 그래서 그 식물에 애착이 가고, 고어플랜트를 대표한다고 소개해요.
고어플랜트 서울이 어떤 기억으로 남길 바라나요?
묵묵하게 등대처럼 삼각지를 밝히는 고어플랜트 서울을 지속해서 운영하며, 고객과 계속 식물을 핑계로 만나고, 함께 늙어가고 싶고, 몇 년 뒤에 봐도 반갑고 멋스러운 이웃이 되고 싶어요.